※ 이 글은 작품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은숙 작가의 로코 귀환, 그러나...
<더 글로리>에서 학교폭력을 주제로 삼으며 그 무게감을 처절하게 다루었던 김은숙 작가가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왔다. 천여 년 만에 깨어난 램프의 정령 이블리스(김우빈)와 감정이 결여된 사이코패스 인간 가영(수지)의 만남을 그린 <다 이루어질지니>는 작가의 이전작 <상속자들>이나 <태양의 후예>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감각으로 회귀한 작품이다.
그러나 공개 직후 넷플릭스 한국 1위에 올랐음에도 시청자 반응은 호불호로 나뉜다. '너무 오글거린다', '중도하차했다'는 반응과 '킬링타임용으로 좋다', '옛날 김은숙 로코 보는 기분이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이러한 반응은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가 더 이상 무조건적 신뢰를 보장하지 않는 시대임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판타지의 문법과 김은숙의 문법이 계속 충돌한다
<다 이루어질지니>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지점은 판타지 장르의 문법과 김은숙 작가 특유의 문법이 제대로 융합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사탄 지니' 이블리스와 사이코패스 인간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내세우지만, 이 설정이 서사를 이끄는 동력으로 작동하기보다는 로맨틱 코미디를 위한 장식처럼 작동되고 극 후반의 작은 반전을 위한 장치 선에 그친다.
판타지 장르는 자체적인 세계관의 일관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신적 존재인 지니는 인간에게 밀리면 떨어져 다치고 램프를 흔들면 토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은 소위 '병맛 판타지 코미디'를 위한 장르적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유머 코드가 작품 전체의 톤과 어긋나고 이야기의 전반과 후반의 톤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전생과 현생을 가로지르는 긴 서사, 목숨을 건 내기, 인간의 타락이라는 무거운 주제와 가벼운 병맛 유머 사이의 온도 차는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양날의 검이 된 '김은숙표 대사'
김은숙 작가 특유의 '말맛' 대사 역시 이번에는 양날의 검이 되었다.
- "나 너 좋아하냐?" (<상속자들>)
- "그 어려운 걸 해냅니다" (<태양의 후예>)
문장 자체로만 보면 어색하지만 극 중에서는 중독성 강한 대사로 유행어를 만들어 온 김은숙 작가. 하지만 <다 이루어질지니>에서 이런 대사들은 맥락없이 등장하는 애정 신과 결합해 시청자들로부터 '오글거린다'는 평가를 얻는다.
극명하게 엇갈린 시청자 반응
시청자 반응이 극명하게 갈린 지점은 명확하다.
호평하는 관객들
이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은 김은숙 월드의 문법에 익숙하고 그것을 즐길 준비가 된 이들이다. 김은숙 작가의 로코(로맨틱 코미디)는 원래 이렇다는 걸 알고 있고, 출연하는 배우의 외모를 돋보이게 만들어준다는 걸 이미 숙지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이런 반응은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평가하기보다는 작가가 그간 빚어온 브랜드, 그리고 배우의 비주얼을 소비하는 태도에 가깝다.
불호를 표한 관객들
반면 불호를 표한 관객들은 유치한 대사, 핍진성을 무시하는 신, 낮은 웃음 타율을 지적한다. 이들의 지적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작품이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재미를 제공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판타지 장르에서 핍진성이 부족하고 서사 또한 웃음의 타이밍을 무너뜨리면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미를 감축시킨다.
김우빈-수지 케미에 대한 엇갈린 평가
9년 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재회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두 배우의 호흡이 실제로 작품에서 얼마나 빛을 발하는지는 의문이다.
감정이 과잉인 지니와 감정이 결여된 가영이라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이 대비가 실제로 로맨스로 설득력 있게 전환되는지는 시청자마다 평가가 갈린다.
물론 극명한 경멸에서 시작해 서서히 사랑과 애정에 가까운 감정으로 변모해 가는 두 인물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은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다. 하지만 이후 가영이 전생의 기억을 마주하면서 과거의 조각들을 맞춰가는 과정은 로맨스의 농도를 희석시키며 작품의 주요 매력을 떨어트린다.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가 마주한 한계
김은숙 작가는 자신의 안전지대인 로맨틱 코미디로 돌아왔지만, 그 안전지대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스터 션샤인>과 <더 글로리>가 증명했듯 작가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하지만 익숙한 장르로 돌아온 작품에서 작가는 자신의 시그니처를 반복하는 데 그쳤고 신선함 대신 피로감과 작품의 약점을 노출시켰다.
<다 이루어질지니>는 판타지라는 장르적 외피와 로맨틱 코미디라는 본질 사이의 불협화음이 지나치게 도드라진 작품이다. 전생과 현생을 가로지르는 서사, 인간의 타락과 구원이라는 철학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정작 작품은 그 무게감을 감당하지 못한다. 로맨틱 코미디로서도 온전한 장르적 쾌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치며
지나친 장르물로 지쳐있던 김은숙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려는 작품으로 돌아왔지만 이 작품이 보여주는 건 김은숙 월드의 건재함이 아니라 그 세계의 균열이다.
한국 로코 드라마는 김은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이 있을 정도였지만, 이제 그 공식은 완전하게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넷플릭스 1위라는 성공적인 기록에도 김은숙표 로맨틱 코미디는 어디로 향해야 할지 길을 잃은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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